당신은 진짜 새로운 피조물인가

존 넬슨 다비 외 지음 | 이종수 옮김 | 출판사 : 형제들의 집

가 격 : 12,000원

출간일 : 2015-06-05 | ISBN(13) : 978-89-93141-73-3

신국판| 204쪽| 152*223mm

  

당신은 진짜 새로운 피조물인가

 

하늘의 삶이 현재를 관통하는 실재적인 삶으로의 초대

 

그리스도인의 삶은 신령한 사람의 삶이고, 그리스도화된 사람의 삶이며, 하늘의 삶이 현재를 관통하는 실재를 가진 삶이다. 그래서 성경은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째서 명목상 그리스도인이란 이름만을 부여잡고서 옛 창조세계에 부대껴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가? 도대체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모습과 면모는 어디에 있는가? 어째서 우리에게선 죽음과 사망을 뚫고 나오는 부활의 능력과 광채를 볼 수 없는 것인가?

오늘날 우리의 신앙은 옛 창조세계의 비굴함 속에 함몰되어 있다. 세상이 가자는 방향으로, 도도히 흐르는 세상의 조류를 따라 무기력하게 흘러 떠내려가면서도, 모로 가도 하늘나라만 가면 된다는 나약한 신앙을 칭송하는 노래만을 부르고 있다. 성경적인 신앙이 아니라, 오히려 반성경적인 신앙이 대세다. 그 결과 제자도가 없는 구원, 성화가 없는 구원, 예수님의 주인 되심이 없는 구원이 세상을 덮고 있다. 옛 사람, 옛 본성, 그리고 육신으로 살면서 무기력한 영성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옛 창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반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화된 사람이라는 뜻으로 그리스도인으로 불렸다.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 11:26)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은 단순히 별명이 아니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한 후, 그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이란 뜻으로 제자의 삶을 살았고, 제자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리스도화된 사람이란 뜻으로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을 주셨다. 얼마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 이름을 주고 싶어 하셨던가? 그들에겐 무언가 혁명적인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과연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바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진리를 통해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와 그들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우리는 천당 가는 티켓을 얻는 것으로 만족했고, 거기서 영적 추구를 멈추었으며, 그 결과 여전히 옛 피조물 상태로 살아간다. 반면 그들은 예수를 구주와 주님으로 믿었고, 그리스도를 닮기를 추구했고, 마침내 영적 해방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진리를 통해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무도 기쁘셔서 그들에게 그리스도화된 사람들이란 이름을 주셨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무엇이 문제인가? 오늘날 전해지는 복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천당 가게 해주는 것으로 소임이 끝나는 것이 문제이다. 순전히 반쪽짜리 복음인 것이다. 우리가 진실한 마음으로 복음서를 들여다보기만 해도, 거듭남과 죄 사함 이후에 제자도가 강조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제자도가 없는 사람, 말씀의 순종과 실천이 없는 사람,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지 않는 사람에겐 (그들이 진짜 거듭난 사람이라는 전제 아래) 부끄러운 구원이 기다리고 있다(막 8:38, 고전 3:15, 요일 2:28, 계 16:15). 반면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믿고, 신실하게 제자의 삶을 살며 그리스도로 사는 사람들에겐 더 큰 구원이 있으며, 더 큰 영광이 있다(고전 15:41, 딤후 2:10, 4:8). 그렇다면 구원의 입문은 동일하지만, 구원의 결국은 다른 것이다.  

마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구원받은 죄인이다.” 그래서 일체 행함을 부정했고, 성화의 삶에 실패했다.

존 칼빈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구원받은 성도이다.” 그래서 율법을 강조했고, 율법주의에 빠져 성화의 삶에 실패했다.

존 넬슨 다비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다.” 그래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길을 열었고, 성화의 삶을 가능케 했다.  

이 책은 구원받은 이후 성화의 삶을 가능케 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책이다. 성화의 삶은 우리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나약한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바라고 소원하는 대로 성화의 삶을 살게 될 것이며, 더욱 영광스러운 구원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이 책은 하늘의 삶이 현재를 관통하는 실재적인 삶으로 초대하는 책이다. 더욱 영광스러운 구원, 더 큰 구원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책이다. 더 이상 옛 창조에 속한 옛 사람으로 사는 삶이 아닌, 새 창조에 속한 새 사람으로 사는 삶을 가능케 해주는 책이다. 이름 뿐인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접고, 새로운 피조물로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이 책에 있다. 이제 이 책을 읽고, 옛 피조물이 아닌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가라. 영광스러운 구원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빈다.

엮은이 이 종 수

목차

엮은이 서문....................................................................8

제 1장.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새로운 창조.............13

by  J. G. 벨렛

사람의 손에 맡겨진 옛 창조, 구속의 필요 - 죄가 세상에 들어오다, 의와 생명을 통한 은혜 역사의 시작, 죄와 사망의 통치권을 깨드려버린 십자가, 육신의 종말을 가져다준 십자가, 부활을 통해서 새롭게 열리게 된 새 세상, 율법에 관해서 흠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했던 아이러니, 육신을 배격하신 주 예수님, 절대적으로 필요한 육신의 죽음, 율법의 열심인가 성령의 열심인가, 죄와 율법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길, 거듭났지만 육신 가운데 사는 사람에게 작용하는 율법의 기능, 하나님의 백성을 성화시키는 하나님의 방법과 규례, 하나님의 영광의 행진, 모든 복은 하나님에게서 나온다, 성령의 계시를 통해서 이르게 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 진정한 구속의 의미, 구속에 대한 특별한 계시를 담고 있는 레위기 25장, 황소와 염소의 피 vs. 예수 그리스도의 피, 당신의 양심은 평안을 맛보았는가, 구속을 위해서 지불된 값의 적정성에 대한 성경의 증언,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구속의 성격, 우리의 근족이신 주 예수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의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 창세로부터 주어진 여자의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새로운 원천 새로운 생명의 통로이신 예수님,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룬 사람들이 새로운 피조물이다, 성령의 내주와 새로운 피조물의 세계,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는 것, 하나님의 섭리의 중심에 있는 부활, 새로운 피조물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부활을 유일한 목표와 자원으로 삼으라, 부활과 연결된 성령님의 마음, 더 큰 영광이 우리 앞에 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 바울 복음의 핵심이다

제 2장. 새로운 창조의 목적..........................................77

by  윌리엄 C. 레이드

옛 창조의 파멸, 옛 세상의 사라짐: 새로운 세상의 시작, 옛 창조의 파멸 상태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영광의 그릇을 준비하는 일을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증거의 그릇들을 준비하는 일을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육신과 새로운 피조물의 관계, 옛 것은 지나가고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다, 화목과 새로운 피조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 새 사람 그리고 새로운 피조물, 새 사람 그리고 새 사람의 증거, 새로운 피조물의 목적, 새로운 피조물의 규례

제 3장. 칭의와 구분되는 새로운 피조물........................93

by  윌리엄 R. 드론스필드

시대를 따라 달리 역사하시는 하나님, 칭의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별개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제 4장. 새로운 피조물의 복과 범위...............................111

by  윌리암 켈리

요단강의 의미, 로마서의 두 가지 주제, 에베소서의 주제, 영적 해방은 새로운 피조물로 가는 관문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지향하는 두 가지 결론, 새로운 피조물은 영적 실체를 가지고 있기에, 도덕성의 승격을 동반한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초월적 감각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진정 가치 있는 것은 새로운 피조물 뿐이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의 삶, 새로운 피조물의 머리와 중심이신 그리스도

제 5장. 새로운 피조물로 사는 기쁨...............................137

by 존 넬슨 다비

이제 새로운 피조물이다, 바울 새로운 능력에 사로잡힌 삶을 살다, 새로운 피조물로 사는 기쁨과 행복, 예수 죽으신 것을 짊어지고 살라

제 6장. 새로운 피조물이 시작되는 지점......................149

by  존 넬슨 다비

우리의 모든 것 되신 그리스도,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을 때 새로운 자리로 들어간다, 그리스도인은 죽는 것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리스도께서 계신 천상세계에서의 삶을 살라,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거하시게 하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로서 완전하다, 육적 몸을 벗음으로써 육신의 낮은 상태에서 벗어나라, 새로운 피조물로서 옛 사람을 대하는 방식, 새로운 피조물이 시작되는 지점,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 진정한 기독교이다, 새로운 피조물은 어디서 만족을 얻는가

제 7장.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의 탄식.....................175

by  존 넬슨 다비

하나님의 임재가 주는 영혼의 안식, 은혜를 아는 지식,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룬 사람의 슬픔과 탄식, 로마서 8장의 영혼의 탄식, 로마서 7장의 영혼의 탄식, 진실한 이성의 작용이 있는가?, 은혜의 광대함의 끝, 하나님만을 의지하라,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라

 

 

 

존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 1800-1882)

근세의 터툴리안(Tertulianus)으로 일컬어지는 존 넬슨 다비는 아일랜드계로 1800년 11월 18일 리프 캐슬, 킹스 카운티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웨스트민스터 학교를 거쳐 더블린의 트리니티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후 아일랜드 대법원에서 변호사로 잠시 봉직하다가 1825년에 영국 국교회의 부제로, 그 이듬해에는 신부로 서품을 받았다.

다비는‘교회는 국가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는 점을 깨닫고 당시 영국의 국교회인 성공회의 신부직을 1827년에 사임했고, 그 이듬해 에는 벨렛(J.G. Bellett), 허친슨(F. Hutchinson), 파넬(Lord Congleton-John Parnell), 그로브스(A.N. Groves), 크로닌(E. Cronin), 스토크스(W.J. Stokes) 등 6명의 신앙동지와 함께 성만찬을 시작함으로써 기성 교계와 결별했다. 이들을 가리켜 세칭 ‘더블린의 7형제’란 부르며, 교회 역사상‘형제 교회’의 시발점이 된다. 이들은 교파나 사회적  신분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확신을 토대로 하여 형제와 자매로 영접되었기 때문에 플리머스 형제 교회(Plymouth Brethren Assembly)라 불리워지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채프만(R.C. Chapman)이 반스테플에서, 크레익과 조지 뮐러가 브리스톨에서 동일한 입장을 취하게 되었고, 뉴톤의 매부이며 저명한 본문 비평가였던 트레겔레스(S.P. Tregelles)가 1836년에 영접되었다.

다비는 그리스도인의 간증(The Christian witness)이라는 잡지를 발행하여 유럽 전역에 배포하였고, 1837년에는 유럽대륙으로 건너가 1840년에는 불어를 사용하는 여러 교회가 형성되었다.

다비의 성경주석(Synopsis of the Books of the Bible)도 이 무렵 출간되었는데 5권으로 되어있는 이 저서야 말로 성경학자들에 의해 극찬을 받고 있는 불후의 걸작이다. 그는 히브리어와 헬라어∙라틴어에 능통하였으며 유럽 각국어에도 유창해서 그가 번역한 불어 성경은 프랑스 전역에서 애용되고 있으며, 새번역으로 불리는 그의 영어 성경은 원어에 충실하기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다. 그밖에도 독일어, 이태리어로 성경을 번역했다. 그의 논문과 설교는 윌리암 켈리(W. Kelly)가 편집하여 32권으로 집대성했다.

만년에는 유럽 전역은 물론 캐나다, 미국, 서인도제도, 뉴질랜드 등지에서 활동하였으며, 영감이 넘치는 찬송을 수없이 작사하였다. 그의 삶은 오직 주님만을 위해 드려진 삶이었다. 1882년 4월 29일 그는 달려갈 길을 마치고 안식과 상급을 주실 주님께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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